“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수유동 본당의 모든 교우 여러분!
우리는 2024년을 새롭게 맞이하고 있습니다. 올 한 해도 2021년부터 시작한 같은 성경 말씀과 같은 지향으로 지내려고 합니다. 매번 달라지는 성경 말씀과 계획보다는 하나의 말씀과 지향으로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고 가녀린 곳은 튼튼하게 만들어 새로운 날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저의 임기를 채우고자 합니다.
2024년에도 우리가 주님께 이끌리는 신앙인이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을 생각해 보고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우선 저는 다음의 세 가지를 기준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우리와 내 어깨의 힘을 빼는 것.
나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고집을 줄이는 것.
나와 우리의 완고함을 깨는 것.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도 사랑에 물들여져야 합니다. 사랑의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사랑이란 이름의 하느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가짜입니다.
제가 새신부로 아버지 신부님을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그때 신부님은 제게 “1년 안에(새 신부 시절 동안) 성인 신부 소리를 못 들으면 넌 가짜야!”라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1년 후 저의 후배 신부가 생겼을 때 교우들로부터 성인 신부라는 소리를 못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지금도 신부님의 ‘성인이란 소릴 못 들으면 넌 가짜야!’라는 소리를 계속 기억하며 살고 있습니다.
오히려 새신부 시절. 성인이란 소릴 듣지 못한 것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음을 깨닫습니다. 만약 제가 성인이란 소릴 들었다면 저는 겸손이란 단어와는 상관없이 살았을 것입니다. 위도 아래도 없이 저 잘난 맛에 주님도 몰라보고 살았을 것입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우리의 부족함도 주님이 주신 보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보물 하면 우리에게 영광과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보물로 인해 하느님도 모르고 겸손이란 심성도 놓치게 된다면 그것이 과연 보물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에서 겪게 되는 모든 것들이 보물이고 지금이 중요하며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라고 믿게 됩니다.
수유동 본당의 모든 교우 여러분!
코로나19로 인한 많은 어려움이 지나가는 듯하였지만 새로운 경제적인 어려움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이런 연속되는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할까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다시 주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17,21)
주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하나 되길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름답게 살아가길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몇 년 사는 인생이 아닌 영원히 살아야 하는 사람이기에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하나가 되기 위한 우리의 실천사항도 앞의 세 가지 기준과 같습니다.
우리와 내 어깨의 힘을 빼는 것.
나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고집을 줄이는 것.
나와 우리의 완고함을 깨는 것.
아울러 서울대교구 교구장이신 정순택 대주교님은 2024년 사목교서를 통해 ‘시노드 교회란 선교하는 교회’임을 강조하시며 “시노드 교회를 향해서 계속 걸어갑시다.”라고 호소하고 계십니다.
교구 차원의 시노드 경험 안에서, 본당 차원의 시노드나 각 공동체 차원의 시노드에 이르기까지, 교황님께서 강조하시는 시노드는 단순히 ‘지금 우리 공동체의 현황이 무엇이고, 문제점이 무엇이니 앞으로 이렇게 개선해 보자’는 정도의 결의를 하는 나눔이 아닙니다. ‘시노드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선교’(For a synodal Church: communion, participation and mission’)라는 이번 제16차 시노드의 주제는 ‘우리 교회가 어떤 모습의 교회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교회론적인 방향성의 제시이고, 우리 모두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지향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주제가 드러내는 바가, “시노드 교회란 바로 ‘친교, 참여, 선교’의 교회”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시노드 교회는 결국 ‘선교하는 교회’ 곧 교회의 본질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선교’란 단순히 세례 받은 신자 수를 늘리는 일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교는 “종교적 산물의 마케팅”이 아니며,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삶 자체가 선포가 된다.”라고 이번 시노드 의안집(52항)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단지 주일미사에 참여하고, 계명을 지키며 착하게 살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해방시키는 한 인격과의 만남, 곧 구원자 하느님, 살아계신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여정이요, 그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만나고, 그 사랑에 감화되어 우리도 사랑의 여정에 동참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선교는 좋으신 하느님을 만난 그 기쁨을 몸소 살고 증언하는 일입니다. 선교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선교의 토대는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드님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요한3,16) 이렇게 예수님의 생애가 성부로부터 파견되어 행하신 선교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과 행동과 인격은 하느님께서 피조물 안에 현존하시는 방식을 드러내고 성사화(聖事化)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바로 선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만난 그리스도인은 모두 선교사입니다.”(복음의 기쁨 120항)
이번 시노드의 주제 ‘시노드 교회를 위하여: 친교, 선교, 참여’ 속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친교’(Communio)란 그저 사회적, 사교적 만남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결합’이라는 수직적 차원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라는 수평적 차원이 있다고 시노드 의안집(46항)은 설명합니다. 시노드 교회가 지향하는 ‘친교’란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인격적 만남을 포함합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성사와 말씀, 그리고 기도 등이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의 친교를 바탕으로 ‘우리 모두의 일치’라는 친교의 수평적 차원이 비로소 가능합니다. 더 나아가 ‘친교’ 안에는 하느님 앞에서 ‘본연의 나’ 자신과 맺는 친교(Communio)도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물질적 풍요로움과 감각적 화려함이나 안락함에 참행복이 있는 것처럼 매달릴 때, ‘나’는 ‘껍데기 나’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본연의 나’를 만나고 그 ‘참된 나’를 하느님 안에서 받아들이고 내 존재를 감사하게 되는 것도 ‘친교’의 한 차원입니다.
‘선교’(Missio)는 ‘친교’(Communio)를 지향하고 ‘친교는 선교적입니다.’ 선교는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논리 대신에 하느님의 논리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모든 차원이 변화하여야 합니다. 교회로 볼 때 이는 단순히 지리적으로 더욱 넓은 지역이나 더욱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 사항, 사고방식, 영감의 원천, 생활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변화시키고 바로잡는 것이기도 합니다.”(「현대의 복음 선교」, 19항) 그러기 위해서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인격적 만남, 곧 친교는 선교의 필수적 전제이고 지향입니다.
‘참여’(Participation)는 ‘함께 가는 길’(syn-odos)이라는 시노드의 어원적 뜻을 잘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인 모두가, 하느님의 백성이요 하느님의 사랑받는 피조물로서, 영원한 생명이요 사랑이신 하느님께 나아오도록 함께 부르심 받은 주인공들입니다. 사회적인 지위나 물질적 조건에 무관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하느님 앞에서 세상의 주인공입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 사회적 약자들이 다 함께 세상의 주인공임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애써야 합니다. ‘복지주의 함정에서 벗어나, 우리가 향하고 있는 새 하늘, 새 땅의 논리를 앞당기면서... 그분들을 동등한 품위를 지닌 존재로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여러분, 2024년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강조하시는 그 ‘시노드 교회’를 향해서 힘차게 계속 걸어가는 한 해가 됩시다. 하느님과 깊은 인격적 만남 안에서 형제자매들을 새로운 존재로 만나 나를 넘어 ‘하느님 안에서 우리’를 만들어 가고, 그 누구도 소외됨 없이 모두가 세상의 주인공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가면서, 복음의 빛과 기쁨이 사회 안에 매력적으로 풍겨 나가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목위원들이 앞장서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남녀 구역장 반장님들, 그리고 레지오 모든 단원, 그리고 단체장님들이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노력할 때 우리의 활동을 통해 많은 열매를 맺는 한 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됨의 힘으로 2024년도 성장과 성숙으로 물들어가길 기도하며 수유동 본당 모든 교우들의 영육 간의 건강을 위해 기도로 함께하겠습니다.
2024년 수유동 성당
주임신부 장광재 요아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