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 안내

성체성사

수유동성당 2015-12-12 (토) 21:40 8년전 1024  
성체성사는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생활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성사로서, 성찬례 또는 미사라고도 합니다. 미사의 성찬전례 중에 빵이 축성되어 예수님의 거룩한 몸, 곧 성체로 변화되고, 포도주가 축성되어 예수님의 거룩한 피, 곧 성혈로 변하기 때문에 미사를 성체성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최고의 영적 양식입니다

인간은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셔야만 생명이 유지되고 성장합니다. 영적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성사를 받고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사람은 영적으로 양육되고 성장하기 위해서 영적인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영적 양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성체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전례헌장」10항이 말하고 있듯이, 미사에서 마치 샘에서처럼, 은총이 우리에게 흘러나옵니다. 성체성사의 은총이란 바로 헌신적, 희생적 사랑으로 오시는 예수님 자신입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나듯이,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빵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헌신적, 희생적 사랑의 힘으로 영적으로 양육되고 성장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의무감에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유 없이 주일 미사에 빠지면 고해성사 봐야 하니까 미사 얼른 끝내고 오자.’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 미사에 담긴 풍부한 은총을 깨닫고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안타까운 현상이 나타납니다. 성체가 얼마나 소중한 영적 양식인지를 이해하고, 미사에서 풍성히 주어지는 은총을 깨닫고 체험한다면, 기쁘고 활기차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 미사에 담긴 뜻은 매우 풍부합니다.


성체성사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미사는 예수님의 최후만찬에서 유래합니다. 최후만찬이란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하신 마지막 식사를 말합니다. 이 최후 만찬은 동시에 파스카(과월절) 만찬이었습니다. 파스카 만찬이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식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의 영도 하에 해방시켜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매해 그때가 되면 출애굽 사건을 이루신 구원의 하느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만찬을 거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파스카 만찬입니다.

미사의 기원이 되는 최후만찬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의 하느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파스카 만찬의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최후만찬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자비에 감사를 드리면서, 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자신의 십자가상 죽음이 하느님 백성의 구원을 위한 희생제사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 절박한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으시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십자가 죽음을 우리 구원을 위해 봉헌하신 것입니다.

최후만찬 석상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는 명하셨습니다. 그 명에 따라 우리는 미사 때마다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1세기 말엽부터 미사를 ‘감사제’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미사 중에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당신 아들을 통해 우리 죄인들을 구원해주신 것,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 전체와 신자들 각자는 하느님의 큰 은혜에 힘입어서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의 제사인 미사에 매주일 참예하는 신자라면, 평소의 삶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수도자는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관장을 시켜주는 일을 한 달 간 했는데, 그 일을 마치고서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누구의 부축도 없이 자신의 힘으로 화장실 가서 일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우리 또한 이 수도자처럼 평소에 당연시 여겼던 것이 사실은 하느님의 큰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진정 감사와 기쁨의 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감사할 줄 알면, 많이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세례 받은 신자는 누구나 복음,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할 사명을 지니는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으면,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성체성사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현존하십니다

최후만찬에서 예수님은 빵을 쪼개어 주시면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포도주가 든 잔을 주시면서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22,19-20) 따라서 미사 때 사제가 축성한 빵과 포도주는 그냥 빵과 포도주로 머물지 않고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됩니다. 미사 중에 축성되는 빵과 포도주 안에 예수님이 현존하시고, 그 현존의 힘으로 빵과 포도주는 변화되어 그분의 몸과 피가 됩니다. 이를 거룩한 변화, 곧 성(聖) 변화라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는 이 변화를 실체변화(實體變化)라고 표현해왔습니다.

실체변화라는 용어는 12세기에 당시의 철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당시 철학에서는 한 사물이 실체(實體)와 우유(偶有)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체란 한 사물의 본질로서,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져서 알 수 없고 단지 정신으로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유란 한 사물의 겉모양으로서, 이는 색깔, 냄새, 무게 등을 지니고 있어서 감각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철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미사 때에 빵의 우유, 즉 그 겉모습은 변하지 않지만 빵의 보이지 않는 본질인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는 것이 바로 실체변화가 말하는 내용입니다.

실체변화설이란 말 자체는 실체와 우유라는 철학적 개념 때문에 다소 어렵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실생활에서 드러나는 예를 통해서 보면 이해하기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꽃집에서 장미 한 송이를 사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표징으로 건네준다면, 그 장미는 내용상 다른 무엇이 됩니다. 장미를 선사하면서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 어떤 의미에서도 바로 자기 자신을 선사하기에 장미는 그 이상의 것으로, 아주 귀중한 표징으로 변합니다.

미사 때에 이루어지는 빵과 포도주의 변화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우리를 위해 헌신하고 피를 흘리신 자기 자신을 선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빵과 포도주는 그 이상의 것이 됩니다. 물론 빵과 포도주의 겉모습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선물해준 장미가 장미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을 받은 사람에게 그 장미는 보통의 장미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 사랑을 담은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미사에서 축성된 빵과 포도주도 그냥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내용적으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표징, 그분 자신을 담은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빵이 예수님의 몸으로,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로 변화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상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 즉 성령에 의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인 성령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변화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세상이 창조될 때 하느님의 영이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은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세상 만물이 있도록 하는 창조의 영이십니다. 2장 7절에는 하느님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까 흙으로 빚어진 아담이 살아있는 인간이 됩니다. 또한 에제키엘서 37장을 읽어보면 하느님의 영의 능력으로 “마른 뼈들”이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창조의 영인 성령은 생명의 영이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창조와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미사 중에 임하시어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성령이시라면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킬 능력도 분명 있으실 것입니다.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믿는 사람이라면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하는 거룩한 변화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사 중에 사제는 성체를 축성하기 전에 항상 아버지 하느님께 성령을 보내주시기를 청원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성찬기도 제2양식).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성변화는 이성으로 완전히 파악해서 개념에 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단지 이성과 개념을 통해 신비에 접근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성변화는 성령이 이루시는 신비이기 때문에 말로 다 표현하기가 불가능하고, 궁극적으로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영성체를 하면서 이 믿음을 분명하게 표현합니다. 사제가 성체를 들어 보이면서 “그리스도의 몸”하면 신자는 “아멘”하고 대답하는데, 아멘은 히브리어로 ‘참으로 그렇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이라는 대답은 눈에 보이는 작은 밀떡이 실상은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종의 신앙고백입니다. 영성체를 하면서 또렷한 목소리로 “아멘”하며 성체에 대한 신앙을 고백을 하면 좋겠습니다


성체성사는 희생제사입니다

성체성사가 제정된 최후만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주시면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포도주 잔을 돌리시면서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루카 22,20),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통해서 당신 몸도 빵처럼 십자가에서 못 박혀 찢겨지고, 붉은 포도주 같은 피를 쏟을 것임을 암시하십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아람어에서 몸이란 단지 살덩어리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자신을 뜻하고, 몸을 내어준다는 것은 남을 위해서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한다는 뜻입니다. 또 피는 몸속에 흐르는 혈액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을 말하는데, 피를 흘린다는 것은 극도에까지, 곧 죽음에까지 이르기까지 자신을 내어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 죽음이 모든 이를 위한 헌신의 죽음, 희생 제사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상 헌신과 희생의 죽음이 교회를 통해 기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최후만찬에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는 명령을 남기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 그분의 십자가상 희생 제사를 기억해왔습니다. 성체성사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기념하고 재현(再現)하는 예식으로서, 이를 통해 우리는 십자가상 희생제사의 효과를 나누어 받습니다. 그래서 트리엔트 공의회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사에서는 “십자가 위에서 단 한 번 이루어진 피의 제사가 재현될 것이며, 그 기념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것이고, 그 구원의 효과는 우리가 날마다 저지르는 죄의 용서에 적용될 것이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366항)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상 희생 제사의 은혜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동시에 우리도 당신처럼 헌신하고 희생하도록 부르십니다(요한 13,14-17). 우리는 이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여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되도록 다짐해야 합니다. 이렇게 성찬례 중에 교회는 예수님의 헌신과 희생을 기념하면서, 이에 능동적으로 응답하여 스스로를 헌신하고 희생한다는 의미에서 성체성사는 교회가 드리는 희생 제사이기도 합니다. 

비폭력 저항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룩한 마하트마 간디(+1948)는 나라를 망치는 7가지 죄악들 중의 하나로 ‘희생 없는 신앙’을 꼽았습니다. 그것은 신앙인들이 겉으로만 희생의 미덕을 찬양할 뿐 자기희생의 정신을 실천하지 않는 위선을 꾸짖은 것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예수님을 매 주일 또는 매일 미사 중에 우리 안에 모시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은 작은 희생도 꺼려한다면, 그것이 바로 위선적 신앙생활입니다. 가톨릭 신자라면 미사 중에 주님의 십자가상 자기 봉헌과 희생에 깊이 감사하고, 일상의 삶에서 희생을 실천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일치의 표지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미사 중에 성체와 성혈을 영함으로써 그분과 긴밀하게 일치하게 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서 머무른다.”(요한 6,56) 세례성사를 통해서 이루어진 주님과의 일치가 영성체를 통해서 더욱 굳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일치하게 되면 그분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이 우리에게 마치 ‘햇볕’이나 ‘비’처럼 내려옵니다(마태 5,45).

주님과의 일치에서 얻는 자비와 사랑은 우리 신앙 여정에 꼭 필요한 영적인 힘이 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든 사랑을 받아야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제대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명은 밥을 먹어야 유지되지만 영적인 생명은 사랑을 통해서 양육됩니다. 예수님은 성체 안에 현존하시면서 바로 이런 사랑을 풍성하게 우리에게 주시기에 성체는 우리 영혼의 양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체는 “영혼의 영적 양식”으로서 우리를 “매일의 잘못에서 해방시키고 치명적 죄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해독제”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도와준다는 말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성체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우리를 그분과 좀 더 닮도록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을 닮으면 그분처럼 하느님 아버지를 오롯하게 공경하고 사랑하는 동시에 이웃 사람들, 특히 약한 사람, 버림받은 사람, 낯선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도록 노력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체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다른 형제ㆍ자매들과의 친교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성체성사에서 그리스도와 이루는 일치는 그 성사에 참여하는 신자들과의 일치와 뗄 수 없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성찬의 공동체와의 친교를 하나로 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6-17)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신자들 간의 일치와 친교를 돌보지 않고 성찬례를 거행함으로써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1코린 11,17)라고 경고합니다.

이렇게 영성체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교회 공동체와의 친교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원하는 사람은 교회 공동체와의 친교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미사 중에 성체를 영하기 위해서 다른 형제, 자매들과의 일치와 친교를 도모하는 기회를 갖습니다. 예를 들면, 미사 시작 예식에서 형제와 자매들에게 자신이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다고 참회를 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해 보편 지향 기도를 바치고 헌금을 합니다. 또한 영성체 전에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라고 기도함으로써 서로 용서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면서 서로에게 주님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이루어진 교회 공동체의 일치와 친교는 미사가 끝난 후에도 지속될 수 있어야 합니다. 거룩하게 변화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 사람들은 거룩한 모습으로, 곧 일상의 삶에서 서로 관심을 갖고 이해하며, 돕고, 나누며, 용서하는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성체성사 통해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이루고 신자들 간의 친교를 실현하는 공동체로 변화된다면,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이 세상에 대해서 대조적(對照的)인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즉 교회는 여러 가지 이유들, 예를 들어서 돈, 지역, 학벌, 성별, 인종 등의 이유로 서로 반목, 대립하는 세상에 대해서 다른 모습의 삶을, 진정 인간에게 행복한 일치와 화합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징표가 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4)이 될 것입니다.


성경 말씀으로 성체성사를 준비합시다

미사, 곧 성체성사는 일곱 성사 중에서 으뜸이 되는 성사로서 풍성한 은총의 샘입니다. 모든 신자들이 매 주일 참예하는 미사가 영적인 기쁨과 힘을 주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이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성실하게 강론을 준비하고, 정성을 다해 미사를 거행할 때 신자들의 마음이 활짝 열려서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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