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동성당 제대 아래 3위 성인 유해 및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유해 (遺骸) 성해(聖骸)
성인의 유해를 교회의 허가가 있을 때 공경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하느님과 함께 지금 천당에서 만복을 누리고 계시는 성인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지체였고 성령의 궁전이었으며, 피를 흘려 순교한 거룩한 몸으로서 영원한 생명과 영광에로 불림을 받은 육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은 성인들의 유해 혹은 유물을 통해 이를 공경하면 많은 은혜를 내리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유동성당 제대 아래 중앙에 한국 103위 성인들 중 세분의 유해를 모셨는데 이 성인들을 소개하면 성 남종삼 요한 : 충주지방에서 1817년 출생 승지까지 지냈음. 관직과 신앙생활을 아울러 하기가 매우 어려웠으나 그가 지은 "천주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최도마 양업 신부님의 영신지도를 받아 신앙생활에 더 투철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강화되고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하여 병인 대박해가 일어났다. 1866년 3월 1일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끝내 거절하고 심한 고문과 곤장을 맞고 1866년 3월 7일 서울 서소문 밖에서 50세를 일기로 참수 치명하셨다.
성 베르뇌 장시메온 주교 : 불란서에서 1814년에 출생. 1837년 사제서품. 1854년 8월 5일 비오9세 교황에 의해 조선교구 제4대 교구장으로 피임. 1856년 입국, 1857년 배론에 신학교 창설, 11년 후인 1866년 2월 대원군이 일으킨 병인 대박해때 체포되어 온갖 형고 끝에 동년 3월 6일 새남터에서 참수 치명하셨다. 성녀 허계임 막달레나 : 시흥군 동면 봉천리에 사는 이씨와 결혼해 두 딸을 두었는데 이들이 기해년 7월 20일과 9월 3일에 순교한 동정 치명자 이정희 발바라와 이영희 막달레나이다. 비록 남편은 완고한 외인으로 천주교를 몹시 싫어하여 끝내 입교시키지는 못했으나 남편 몰래 신앙을 지키며 두 딸을 입교시켜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기도에 힘입어 훗날 순교하게 된 것이다. 이러는 동안 겪은 희생은 참으로 대단하였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후 그녀 자신도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시누이 집으로 와서 두 딸과 시누이와 함께 주님께 충성을 다하고 박해를 당하더라도 끝까지 항구하자고 서로 격려하던 중 1839년 5월에 두 딸을 먼저 주님의 품으로 보내고 그녀도 같은 해 9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치명하셨다. (가톨릭 성인사전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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